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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달리한 첫 사수, 유병찬 소장님을 생각하면서

작성자
노지방산
작성일
2022-09-22 00:32
조회
397
세상을 달리한 첫 사수, 유병찬 소장님을 생각하면서

중앙청, 김영삼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으로 폭파해버린 화강암 건물. 그 곳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은어로 돌집에 근무한다고 했었다. 직사각형 건물의 가운데 두 곳이 ‘ㅁ’자 모양으로 파여져 있다. 1층에서 보면 하늘이 그대로 보인다. 이 건물의 전체 모양이 ‘日’이다. 곧 일본의 ‘일’자이다. 그리고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서울시청의 화강암 건물의 모양이 ‘本’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개를 합쳐보면 ‘日本’이 되는 것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했을 때 조선 총독부가 들어선 곳이고, 일본이 얼마나 길게 보고 한일합방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다. 나는 그 곳에서 7급 국가공무원으로 공채되어 근무하게 되었다. 총무처 연금국 연금복지과에 발령을 받았다. 공무원복지사업을 막 시작하던 시기였고, 중앙청 부지 모서리에 시범적으로 공무원후생관을 신축하여 공무원연금매장, 수영장, 사우나, 예식장을 갖춘 종합복지설을 운영했다. 그 휘하에 있으면서 회계가 독립된, 정부종합청사 1층 로비에 복지시설로 휴게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정부회계 방식이 아니고 기업회계방식을 채택했다. 회계책임자로 유병찬 소장님이 분임출납관으로 보직을 받고 나는 그 밑에서 분임출납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대차대조도 만들고 손익계산서도 별도 작성했다. 수표용지에 분임출납원인 내가 도장을 찍고 분임출납관인 유 소장님이 도장을 찍으면 바로 당좌수표가 발행되고, 그것을 은행에 제시하면 현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검찰직원이 우리 사무실을 급습했다. 내가 매일 작성하던 회계장부도 모두 압수하고 유 소장님과 나는 검찰에 구속됐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휴게소에 현장 책임자로 지배인이 한 명 영업직으로 있었는데, 그 분이 사기를 쳤다는 것이다. 지배인이 공무원들(유 소장과 나)과 휴게실을 동업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동업에 동참하는 하는 조건으로 어떤 여성으로부터 투자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 여성은 동업이니까 자기에게도 휴게소에서 역할이 주어질 것을 기대하고 분배금을 기대했지만 차일피일 미루어 지면서 계속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유 소장님과 나까지 팔면서 휴가비도 주고 하숙비도 주고 매월 일정 금액을 주다 보니까 그 여성분에게 줄 분배금이 모자란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여성분은 오랫동안 기다려도 해결이 되지 않으니까 검찰에 고발을 하고, 급기야는 그 당시 총무처 장관 개인집에 쳐들어갔다. 아이들을 셋을 데리고 퇴근해 있던 장관집에 들어가서 정부종합청사휴게소 소장 유병찬과 그 부하 신현조가 지배인과 짜고 자기에게 동업을 하게끔 사기를 쳤다 라고 장관에게 직접 호소하러 갔었다는 것이다. 자기는 전 재산을 털어 동업하는 투자금을 넣었기 때문에 지금은 생활비도 없어서 아이들과 굶어 죽게 되었다고 하면서 장관이 책임지라고 강하게 민원을 제기했다고 들었다. 총무처는 비상이 걸렸다. 정부종합청사휴게소 운영과 관련된 비리로 민원인이 직접 장관 집까지 가게 되었으니 그 바로 다음날부터 연금복지과 전 직원들이 동원되어 장관 집 주변을 지켰다 그 민원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유 소장님과 나는 직위해제가 되었다. 일단 비리가 있는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출근할 자리도 없었다 그냥 연금복지과에 소속이지만, 앉을 자리도 없었다. 징계는 아니지만 공무원사회에서는 매우 중대한 오점의 경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사기록카드에 실리고 평생 따라다닌다. 앞으로 보직변경이나 승진할 때가 되면 직위해제는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보직도 배제될 수 있고, 승진도 엄청 늦어질 수가 있다. 공무원사회에서는 승진할 때 훈장이 있어도 경쟁에 밀릴 수 있는데, 직위해제라니 이러면 경쟁이 될 수가 없다.

유 소장님은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 같은 스타일이었다. 하남 신장에서 오래 살았다고 한다. 검찰 조사를 1주일 정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가 내게는 총무처에 갓 들어온 신참 공무원이었기에 일에 대한 의욕은 컸고 사명감도 있었다. 총무처 자체 감사도 두 번이나 받았다. 검찰 조사나 자체 감사에서도 그 어떤 혐의나 금전을 받지 않고 횡령은 한 것도 없고 일을 부당하게 잘 못 처리한 것도 없음이 밝혀졌다. 결국 구속된 지배인이 자기 혼자 저지른 짓이라고 자백을 했고 그는 결국 실형을 받았다. 그렇지만 민원인이 장관 집에까지 찾아가서 소란을 피운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잘 못한 것이 없다고 밝혀졌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장관에게 직위해제를 풀어주고 업무에 복귀하자고 건의를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나는 25살 젊은 나이에 푸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직위해제를 당하다 보니까 너무나 억울하여 양복 주머니 한 쪽에는 소청심사신청서를 써서 넣고, 다른 쪽 주머니에는 사직서를 넣고 다녔다. 직위해제는 90일이 지나서도 업무복귀 명령을 받지 못하면 바로 공무원에서 해임되게 되어 있다. 주변의 직원들도 직위해제된 우리와 말을 섞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건성의 인사만 나누고 더 이상 대화는 기피하고 있었다. 매일 출근해도 앉을 자리도 없고, 일도 주지 않아서 제 기억에는 한 달이 되지 않아서 아예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멀리 여행을 가거나 할 수는 없다. 사무실에서 연락이 오면 바로 출근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사직동 하숙집에서 아침과 저녁은 주지만, 점심은 주지 않기 때문에 슈퍼에서 식빵 큰 봉지와 딸기잼 한 병을 사두고, 식빵에 딸기잼을 발라서 먹었다. 그러면서 혼자 바둑책을 보면서 바둑판에 흑백의 돌을 놓으면서 사무실에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연락은 없었다.

직위해제된 지 거의 90일 다 되어갔을 때 복직되었다. 유 소장님이 금전을 받거나 부당하게 일을 처리했거나, 아니면 내가 그렇게 했더라면 우리 둘은 그 매서운 수사와 감사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불명예스럽게 공무원직을 사직했을 것이었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유병찬 소장님이 너무나도 고맙다고 느낀다. 신참인 나를 잘 이끌어주어서 그 험한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공단을 창단하는 일을 맡았던 연금기획과장님이 나를 불러서 공무원으로 성장하는데 직위해제는 큰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 공무원연금공단으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권유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나는 공무원을 하기 위해서 국가공무원 7급 공채로 왔어요. 내가 왜 연금공단에 나갑니까? 전 안 나갑니다.’ 그 후 신정 연휴 3일동안 포항 집에서 쉴 때, 아무리 생각해도 직위해제가 억울했다. 정말 열심히 일을 하고 국가에 충성했는 데, 그 조직이 나를 배신했다는 강한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날 배신하는 조직에 그 무슨 미련이 있을까? 그래서 배신한 조직에 사표를 내고, 새롭게 직장을 잡는다고 생각해보자 라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신정 연휴를 끝내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다시 연금기획과장님을 집으로 찾아갔다. 연금공단에 보내주십시요 라고 요청했다. 과장님은 ‘임마 가라고 할 때는 안 간다고 펄쩍 뛰어놓고 이제는 늦었다. 갈 사람들이 다 정해졌다. 안 돼’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발표 명단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중에 보니까 유병찬 소장님도 연금공단에 와 있었다. 유 소장님과 나의 직속 상사인 사무관도 총무처 공무원 신분은 그대로 있으면서 일시적으로 공무원연금공단에 기금운용과장(지금의 팀장)으로 파견나왔다. 그 분이 다른 부서에 있는 나를 기금운용부서로 데려갔다. 그 때 직위해제로 감사받는 동안에 2년간의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가지고 현금흐름변동표를 작성해서 그 사무관에게 보고했다. 2년간의 사업활동을 계정과목을 보면서 현금이 얼마나 들어왔고 현금이 얼마나 지출되었지 밝혔다. 그렇게 계산하여 있어야할 현금액과 현재의 은행에 있는 현금이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사업자금이 한 푼도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 보고서를 보고 그 사무관이 감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꼴도 보기 싫었을 나를 자기 부하로 데려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휴게소 비리 민원 사건의 영향으로 지휘책임을 지고 산하기관인 연금공단에 파견된 것이었다. 유 소장님도 그렇게 나온 것 같았다. 연금복지과장님도 그 지휘책임으로 국장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모든 분들께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직위해제 때문에 나는 총무처에 사표를 내고 공무원을 떠나서 연금공단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직장생활의 큰 분기점이 된 것이다. 유 소장님 덕분에 직위해제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그 덕에 연금공단에서 임원까지 승진하고 정년퇴직 때까지 잘 근무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유병찬 소장님! 고이 잠드소서!!

2022.9.20 하남 마루공원 장례식장에서 작별의 인사를 한 신현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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